기술혁신학회 `과기 규제개혁 방향과 과제` 토론회
최근 사회 전 영역의 불필요한 규제를 없애려는 국가적 노력이 이뤄지고 있는
가운데 과학기술 분야에서도 규제개선 움직임이본격적으로 진행되고 있다.
아이디어와 기술, 산업간 융합을 통해 새로운 미래산업을 발굴ㆍ
성장시키려면소모적이고 비생산적인 규제로부터 현장을
자유롭게 둬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최근 이뤄지는
과학기술 규제개혁 논의 내용을 정리했다.
19세기 말 영국에서 자동차가 도로를 다니기 위해서는 반드시 운전수,
기관원 외에 붉은 깃발을 든 또다른 한 사람이 앞장을 서야 했다.
이 사람은 낮에는 붉은 깃발, 밤에는 붉은 등을 가지고 전방에
자동차가 오고 있다고 소리치거나,
자동차가 지나갔다고 붉은 깃발을 흔들었다.
자동차의 최고 속도는 교외에서 6km, 시가지에서는 3km로 제한됐다.
이 규제가 바로 세계 최초의 자동차 규제인 `적기조례'다.
증기자동차가 처음 공공도로에 선을 보이자 사고의 위협을
느낀 주민들의 민원과,그동안 교통 영역을 지배하던 마차ㆍ기차 업자들의
로비로 만들어진 이 규제는 결국 1896년까지 이어져 영국
자동차 산업의 위축을 가져왔다.
결국 영국은 자동차 산업의 주도권을 후발국인 독일과 프랑스에 내주게 됐다.
적기조례는 규제가 어떻게 국가 경쟁력까지 좌우하는지 보여주는
대표적 사례로 꼽힌다. 과학기술 연구개발자들은 현장에 남아 있는
각종 `적기조례'들에 대한 개혁 없이는 창조경제를
이끌어갈 경쟁력 있는 신기술ㆍ신산업 창출이 힘들다고 목소리를 모으고 있다.
지난 28일 오후 서울 역삼동 과학기술회관에서 한국기술혁신학회 주최로
열린 `과학기술 규제개혁 방향과 과제' 토론회에서이광호
과학기술정책연구원(STEPI) 연구위원은 "인간의 기술 발전 속도는
규제 발전 속도보다 항상 빠르다"라며 "기존 규제 범위를 뛰어넘는
새로운 제품이나 서비스가 등장하면 기존 규제를 그대로 적용하는 것이
현실에 맞지 않거나 적용기준 자체가 모호해지는 `규제지체'
현상이 발생한다"고 지적했다.
규제는 사회적 합의의 산물이기 때문에 기술 발전 속도에 비해
대응이 늦을 수밖에 없고, 이로 인해 개발 주체들이 어려움을 겪는 것이
규제지체 현상이다. 특히 최근 기술발전 속도가 가속화되고,
기술ㆍ산업간 융합이 숨가쁘게 이뤄지면서 이같은 규제지체 현상이
더욱 심화되고 있다.
대표적인 예가 `트럭지게차'다. 2008년 한 중소기업은 앞은 트럭이고
뒤는 지게차인 융합 신제품을 개발했다.
하지만 트럭지게차는 트럭인지 지게차인지 관계 법령상 허가기준이
불분명해 제품 허가가 2년 이상 지연됐고,
결국 업체는 수십억원의 개발비 손해를 떠 안게 됐다.
결국 2011년 산업융합촉진법이 제정된 후에야 세상에
선을 보일 수 있게 됐다.
◇신산업ㆍ신시장 창출 위핸 `스마트 규제' 필요=과학기술은 영향력이
광범위하고 제한된 전문가 외에는 정확한 파급효과를 파악하기
힘들다는 특징이 있다. 이 때문에 안전하고 검증된 기술이나 제품이
시장에 나올 수 있도록 하는 규제가 반드시 필요하다.
하지만 과도한 규제는 연구의 창의성을 저해하고,
기업의 행정비용을 증가시켜 신기술 제품화와 시장진입을 지연시킬 수 있다는
양면을 갖고 있다.
특히 우리나라의 경제 구조가 생산ㆍ제조업 중심의 산업경제에서 R&D를
기반으로 한 창조경제로 축이 옮겨가면서 과거 30년간 이어진 산업 중심의
R&D 제도를 큰 틀에서 개혁할 필요가 있다는 것이 산업계의 주장이다.
현재호 테크노베이션파트너스 대표는 "산업경제에서 R&D는 제품 생산을 위한
`비용'이었지만 창조경제 시대의 R&D는 `자산' 개념으로 더 키워야 할 대상이며,
R&D 서비스 자체도 하나의 산업으로 보고 촉진해야 한다"며 "R&D 서비스 산업
성장을 촉진시키는 `스마트 규제'로국가 R&D 사업 개념의 재구축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연구자 신뢰 바탕으로 과감한 규제 철폐 필요=연구자들은 연구개발 활동의
효율을 저해하는 각종 규제들을 제거하는 것이 시급하다고 입을 모으고 있다.
특히 부처별로 서로 다른 R&D 관리규정을 단일화하고,
연구 관리에 대한 포지티브 방식의 규제를 네거티브 방식으로 바꿔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았다.
연구자가 할 수 있는 것을 규정해 나머지는 할 수 없도록 만들 게 아니라,
연구자가 해서는 안 되는 것만 명확히 정의함으로써 나머지는 자유롭게
하도록 해야 한다는 것. 연구 과정에 불필요한 행정 수요를 줄이고
연구자들이 자율적, 창의적으로 연구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 주기 위해
연구성과 중심으로 규제 시스템을 변화시켜야 한다는 것이다.
이성국 한국전자통신연구원(ETRI) 책임연구원은 "35년 동안 규제가
계속 늘어나고없어진 것이 없다"며"아이러니한 점은 규제가 없었을 때 성과가
훨씬 좋았다는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3년 짜리 과제에 최소 12회의
평가를 받아야 하고 규정이 있어도 결국 실무자가 일일이 전부 담당자와
협의해야 한다"며 "해외 선진국들과 성과 비교를 많이 하는데
막상 시스템이나 프로세스는 선진국처럼 고치지 않는다"고 지적했다.
김상선 국가과학기술심의회 정책조정전문위원장은 "R&D 측면에서는
많이 개선되고 있지만여전히 정부의 규제 개혁 노력이 산학협력,
연구관리 등까지 침투가 안되고,
규정을 너무 엄하게 적용하거나 경직되게 운영하는 측면이 있다"며 "
특히 최근 강조하는 융복합, 통섭 등에 따른 오픈 이노베이션 측면에 있어서는
여전히 고칠 것이 많다"고 강조했다.
남도영기자 namdo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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